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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어진 시간. 소공동 112
  • Post By. 해버데셔스 (ip:)
  • 작성일 2014-08-18
  • 조회수 2209
  • 평점 0점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패션의 중심지는 압구정도 신사동도 아니었다. 명동 그리고 한국 은행을 등지고 서울 시청을 관통 하는 112번지 거리. 그 시절 모든 사람들은 그곳을 한국의 셰빌로(Savile Row) 거리 라고 이야기했다. 모든 패션과 유행은 그곳에서 시작 되었다. 부유한 이들에겐 기분 좋은 쇼핑 공간, 가난한 이들에겐 꿈의 거리였던 소동동 112번지

 

 

시간이 흐르고 50년이 지난 지금. 소공동 112번 거리는 고장 난 시계처럼 모든 시간이 멈추어진 동네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흉물스런 낡은 건물들만 남은 버려진 동네로 기억 되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빛 바랜 기억들이 남겨진 낡은 서랍 같은 동네로 기억되고 있는 그곳. 소공동 112번지는 사람들에게 다른 이름으로 "소공동 맞춤 거리" 로 불러지는 동네다. 60-70년대 본격적인 서양 복식 문화의 유행이 시작 되면서 꽃 피게 된 테일러 샵. 몇 년 전 비스포크의 유행했던 것처럼 많은 샵 들이 생기면서 하나의 패션 트랜드로 자리 매김 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소공동 112번지는 맞춤의 메카이자 모든 패션 흐름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70년대 빛 바랜 거리를 연상 시키는 소공동 112번지 일대 맞춤 거리의 모습들

 

 


 

 

그 시절 맞춤을 입는 다는 것은 단순한 옷을 산다는 단순한 의복 구매를 넘어서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공한 사업가나 정치인, 기품 있는 지식인 층들이나 입을 수 있던 부르주아 계급의 상징과도 같았고, 몇 백 년을 이어 온 한국 복식 문화에서 60년대 경제 개발 기에 들어오면서 함께 급속하게 들어 온 서양 복식 문화는, 진취적인 이들에겐 날개가 되어주는 꿈의 옷과도 같았다. 그런 의미들에 있어서 소공동 112번지는 단순한 맞춤 거리를 떠나 근 현대사에 중요한 부분이자 사라지면 안 되는 복식 문화의 유산 중 하나이다.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와 테일러가 강조하는 "정성"이 담겨있는 체스터필드 컬렉션의 모습

 

 


 

경제 성장과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맞춤 방식의 의류 제작은 대량 생산이 가능한 기성복 시대로 이어지고, 자연스럽게 맞춤 시대는 영광의 시간을 지나 점점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맞춤 시장이 패션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60-70년대 맞춤의 가치를 알고 있는 이들에겐 여전히 맞춤은 특별한 옷 이자, 만드는 테일러 들에겐 포기 할 수 없는 귀중한 자산과도 같았다. 시간은 흐르지만 그 흐르는 시간을 거부한 이들이 바로 이들이다.

 

 

 

 

 

 

80여년의 전통의 국내에서 가장 오래 된 테일러 샵 해창 테일러

 

 

 


그들의 마음이 담겨있는 이유는 아니지만 소공동 112번 거리의 모습은 그 시절 그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 시절만큼 많은 샵 들이 남은 건 아니지만 1929년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한 해창 테일러 에서부터,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SLWK" 아틀리에까지 10개의 맞춤 가게가 소공동 112번지에 존재해 있다. 남루한 건물들 사이에 옹기 종기 모여 있지만 샵 의 내부는 외관과 다르게 고풍스런 디자인과 자신의 일에 높은 자부심을 가진 맞춤 명장들이 그들의 샵 을 빛 내고 있다.


 

모든 게 멈추어진 소공동 112번지. 한때는 찬란했던 그 곳이 멈춰진 이유는 뒤 떨어진 유행도, 세월의 흐름도 아닌 사람들의 무관심 때문이다. 위에서 잠시 이야기 한 것처럼 몇 년 전 비스포크 열풍이 불면서 맞춤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유행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맞춤의 메카인 소공동 112번지도 다시금 재조명 받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정부의 지원이 있을거란 이야기도 있고 서울시의 재계발의 움직임이 있을 거란 이야기도 있었지만 단지 이야기만 있었을 뿐 그 이상의 움직임도 지원도 없는 상태이다. 그들의 대한 조금의 관심이나 그들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면 지금의 소공동 112번지는 이렇게 사람들에게 냉담하게 잊혀지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모던함이 묻어 있는 디자이너 이현석과 이인우가 함께 만든 비스포크 브랜드 SLWK

 

 


 

확실한 한가지는 지금의 우리나라 의복 문화와 기술력의 발전은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 이다. 일 예로 유럽의 유럽에 비스포크 기술 대회가 있었는데 매년 우승자가 한국에서 배출 되다 보니 대회를 중단 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맞춤 기술력은 세계에 내 놓아도 뒤지지 않을 만큼 우수하다. 소공동에 맞춤 집들에는 그들의 대회 수상 상장이나 역대 대통령들에게 받은 상장들로 가득하다. 그 만큼 자부심과 오랜 노하우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들을 이뤄 낸 그들이다.

 

 

 

 

 

아일랜드 콜렉션 매장에 진열되어 있는 테일러의 상장.

모든 맞춤집이 그렇듯 대부분의 명장들은 최소 20-30년의 명장 경력을 가지고 있다

 



 

 


멈추어진 시간. 모든게 정지 된채 빛 바래가는 소공동 112번지 이지만 그 속에 살아가고 그들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시간을 멈추었어도 그들의 수고와 의미만큼은 영원했으면 좋겠다. 지금 이 글이 "오래 전에 이런 게 있었다."는 과거의 이야기처럼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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